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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일의 즐거움/쓰는 일의 즐거움

그림자로 이야기쓰기

by 시엘 Ciel 2020. 3. 9.

 

2017.04.09

 

 토요일에는 꼭 기록해 두고 싶었던 즐거운 일이 있었어서 포스팅과는 별개로 일기장에 일기를 썼는데요. 일기를 쓰면서 느꼈던 즐거움이 잊히지 않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일기를 썼고, 지금은 일요일 아침이니 하룻밤을 푹 자고 난 뒤인데도 노트북 자판 위로 빠르게 손끝이 움직여가며 제가 원하는 문장을 만들어냈던 어젯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내가 글 쓰는 걸 정말 좋아하는구나, 실감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어려서부터 글을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글을 쓴다?’ 생각해보니 너무 거창하네요.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는 게 더 정확하겠어요. 초등학생 때는 자주 에이포지를 여덟 쪽으로 나누어 접어 동화책을 만들곤 했고 6학년 부터는 노트에 <다니엘 세티>라는 동양판 <해리포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 때에 빠져 읽던 <람세스>의 컨셉을 더해서요. ('세티'라는 이름에서 '람세스'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중학생 때는 덕질 중의 최고봉이라는 팬픽을 블로그에 연재했습니다. 부끄러우니까 누구 팬픽인지는 얘기하지 않을게요. 다시 그 글을 읽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말 거예요.

 고등학생 때는 시를 지었습니다. 공모전에 내기도 했어요. 그때는 나름 잘 쓴 시라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냈는데 결과는 ‘팡탈’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힘들 때마다 제 이야기나 새벽에 꾼 꿈에 살을 덧붙인 일기를 썼습니다. 어제의 일기도 제 이야기에 약간의 소설성을 가미한, 살을 덧붙인 일기입니다. 이런 글을 쓸 때 저는 제 손 끝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걸 느껴요. 그 순간이 정말이지 너무 즐겁습니다. 이어서 어떤 이야기를 쓸지 생각하는 게 말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어서 쓰는 동시에 다음의 전개에 대한 생각이 이어집니다. 그러다보면 이십 분도 쓰지 않았는데 어느새 세 페이지가 넘어가 있어요. 과제를 하면서 소논문을 쓸 땐 고작 여덟 페이지 정도에 일주일을 쏟아 붓는데 말이죠.

 저는 김영하 작가, 박상영 작가, 최은영 작가를 좋아합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요. 저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은데 아직 저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짙은 색의 ‘테마’가 없습니다. 저만의 '테마'가 없을 만도 한게, 생각해보면 제가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저의 그림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 금기들을 풀고 싶어서예요. <인간 본성의 법칙>(무려 꼬꼬독 추천!!!) 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모두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그걸 책에서는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근데 이 그림자는 우리가 숨긴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사회생활에 맞게 견고한 페르소나를 만들어낼수록 그림자는 점점 더 커지고, 결국 삶의 어느 순간에 튀어나온다고 합니다. 분노하거나 실망했을 때요. 그래서 이런 그림자를 소설가들은 소설로 해결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그런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도 우리 사회에서는 ‘금기’로 여겨져 분출하지 못하던 그림자의 행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동의합니다.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그림자를 해방시키고 싶어서 글을 쓰거든요.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그림자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그림자’를 나의 테마로 삼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기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김영하 작가의 테마도 이와 유사하다고 남몰래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요즘 읽고 있는 김민식PD님의 <매일 아침 써봤니?>에서는 ‘뭐든지 노는 게 제일!’이라고 합니다. 일도 우선 즐길 수 있어야 한데요. 노는 게 곧 일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좋아하는 ‘그림자 이야기 쓰기’를 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김영하 작가같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졌습니다. 지난 학기 <소설 감상과 창작> 수업에서 엄청나게 치밀한 전개를 세워뒀지만(!) 결국 그건 제 생각이었고 이도 저도 아닌 작품으로 끝나버린 저의 첫 번째 단편소설이 떠올랐거든요. 그래서 조금 가벼운 웹소설을 쓰는 느낌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을 쓰려면 공부를 해야겠죠? 그래서 김민식 PD님처럼, 저도 이번 한 달간 웹소설과 소설을 열심히 공부해보고 블로그에 그 내용을 조금씩 업로드해 볼까 생각중입니다. 시중에 웹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학부 공부를 하면서 남겨 둔 소설 창작 교재와 필기도 그대로 남아 있고요. 참, 공부를 하면서도 일기는 꾸준히 쓸 생각입니다. 일기에 있는 제 그림자들에 살을 붙인 소설을 쓰고 싶으니까요. 한 술 더해서 꿈일기도 쓸 생각이에요. 이미 오늘 아침 꿈 일기는 썼답니다. 하하.

 이렇게 웹소설을 공부하고 일기를 쓰고, 제 그림자에 살을 붙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김영하 작가님의 작품 같은 소설을 쓰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감히 <명예살인>이나 <바다이야기1,2> 같은 짧은 소설은 흉내라도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물론 분량에서요.)

 웹소설이든 단편소설이든 결국은 소설이에요. 결국 쓰는 연습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꿈일기를 쓰고 노트북 앞에 앉은 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하루도 힘차게 살아야겠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